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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절차 및 비석제작 필수내용

할머니 빈소모습

새벽에 전화벨이 울리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신지 약 7년 즈음 되어가고
있으며, 기력이 약해져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치의에게 들어서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다.

새벽에 큰 고모로 부터 전화가 오는데
예상대로 비보가 전해졌다.

 

상을 당하면 당황한다.

보통 가족이 운명하면 119 또는 병원, 경찰, 장례식장 등
연락하는 방법이 천차 만별이다.

경찰에게 전화하면 자연사 또는 정상적인 사망시에도
원인 파악으로 인해서 장례가 지연되는 경우가 있고
번거롭다고 한다.

망자의 옷을 갈아 입히거나, 옮기는 행위는 의심을
가중 시키는 행위임으로 절대 해서는 않 된다.

또한 119 역시 살아있는 사람만 구호 활동을 할뿐이고
사망자는 대응이 미흡하다고 한다.

상기 상황에서 무난한 절차를 거친다고 해도
유족이 별도로 병원 방문 등을 통한 사망 진단을
받아야 하는것도 어려운 일이다.

 

장례식장에 연락하면 프리패스

할머니는 안성의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장례식은 당진에서 하고자 한다.

먼저 언급한 바와 같이 요양원 에서는 일체의
어떤 조치도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우선 당진 장례식장에 전화를 하니
사설 앰블런스를 배차 해서 연결해주는데,
당진 장례식까지 고인을 옯겨 주며 비용은
앰블런스 기사에게 다이렉트로 지급하였다.

이후 부터는 장례식장에서 모든 행정 처리가 가능한데
사망 진단서도 익일 저녁 병원에서 발급해서
가지고 올 예정이라고 한다.

장례식장은 현재 아무도 빈소가 없어서 우리
할머니만 단독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장례 옵션 선택

화장, 매장 여부 및 장지 이동방법, 빈소옵션
조문객 식사관련 비용등 모든 절차를 협의
하게 되며 부고 앱 관리 까지 대행해준다.

우린 할머니를 화장할 예정으로 화장장 안내
부터 시간 예약까지 모두 장례식장에서 처리 해주었다.

갑작스런 운명 소식을 들었다면 무조건
장례식장 연락이 편리하다.

당진장례식장 내부모습조촐하게 모여있는 근조화환

어느덧 하나 둘씩  근조 화환이 모여들고 있는데
그리 많지는 않다.

나의 경우는 손자라서 그런지 친구나 직장 또는
지인을 초대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할머니 연세가 103세 되는 해이며 할머니 동생,
오빠 및 심지어 큰아들도 10여년 전 운명 하셧다.

품앗이 개념이라서 그런지 마을 분들이 제법 많이
오긴 하셨지만, 연로하신 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참석을 많이 하지 못햇다.

의외로 할머니 친정 마을인 서산 해미 억대리에서
많이 찾아 주셨다.

장례식장 식당풍경

조문객은 많지 않지만 할머니 자손이 많아서
증손자까지 합하면 우리 가족만 있어도 제법
시끌 벅적하고, 적적하지는 않았다.

 

발인 하는 날

발인 하는 날 비 소식이 잡혀 있는데,  100mm 이상
폭우가 내린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할머니는 화장을 한 후 할아버지 산소에 합장을
하여 안치 할 예정이다.

비가 오면 땅을 파는 과정에서 물이 고일 수 있어서
봉분이 비를 맞지 않도록 천막을 미리 설치하였다.

할아버지 봉분

가시 나무는 매년 풀어야 할 숙제인데,
매년 벌초는 하지만 완전한 제거는 어렵다.

할아버지 봉분에 천막을 설치한 모습

아침 발인 예배를 마치고 화장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화장하는 시작 시간은 대략적으로  1차 08시, 2차 10시,
3차 13시 정해져 있다.

홍성으로 예약하려 했으나, 평택에서 왔기에 관내가
아니라는 이유로 1차, 2차 타임은 예약이 불가능하고
3차 예약만 가능하다고 해서, 2차 예약이 가능한
천안 화장장에 10시 예약을 하고 천안으로 가고 있다.

천안 화장장 3층 내부모습

화장장 비용은 관외라서 400,000원 이고
사망 진단서와 상주의 신분증이 있으면 된다.

화장장에 할머니를 인도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엄청 넓다.

원래는 12시즈음 화장 일정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 예약에 관계없이 화장장을
방문한 모든 유족이 약속이나 한 듯
빨리 도착하고 빨리 끝나고 있는 상황으로
09시 30분 부터 화장이 시작되었고
약 1시간30정도 소요 되었다.

 

마지막 작별의 시간

어느 덧 화장이 완료되고 유골을 수습하여
할머니는 함에 담겨져 나왔다.

화장장을 나오면서 할머니의 유골은
나의 무릎에 올려진 채로 장지로 이동하고
있으며, 뜨거운 열기가 한참 동안
나에게로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지 60년이 넘어서 유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유골도 빠른 시간내에 흙으로 돌아가시도록
하기 위해 화장을 선택하였다.

발인때 부터, 화장장, 장지까지 동행하여
주신 요양원 전담 목사님께서 간략하게
예배를 드린 후 할머니를 장지에 모셧다.

보통 평장이나, 기존의 봉분에 유골을 모실 경우
봉분의 절반을 걷어내고, 평면부에서 최소
30cm 이상 땅을 파고 유골을 넣는다.

흙의 압력을 감소 시키기 위해서 유골함 위에
덮을 수 있는 오동나무 등과 같은 합판을
30cm x 30cm 크기로 덮으면 흙을 덮고
땅을 다질때 유골이 압력을 덜 받게 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기존 봉분의 일부를 걷어내고
다시 봉분을 만들 경우 봉분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서 유골함을 넣을 공간만 흙을 걷어냈다.

약 50~60cm 정도 깊이로 파고 바닦에 한지를 깔고
유골함을 넣은 다음 함 위에 한지를 한겹 올리고
상주부터 차례로 한 줌씩 흙을 손으로 집어서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있다.

흙을 넣고 다지길 반복하면서 잔디를 끝으로
봉분을 마무리 하였다.

처음 계획은 봉분 자체를 모두 걷어내고
할아버지를 다시 수습해서 유골함에 모시고
할머니와 더블어 나란히 모신 다음에
평장형 묘에서 사용되는 평평한 비석을
설치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집집마다 봉분의 모양 및 비석이 다르면
보기 싫다고 집안 어른들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간략하게 진행하였다.

 

비석 설치 계획 수립

할아버지 봉분이 비석 없이 지낸 세월이 60년이다.

할머니를 할아버지 옆에 모시게 됨으로써,
드디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쉬운게 하나도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 가실때 즈음  고모나 작은 아버지는
10세 이하로 할아버지 생일을  알고 있는이가 없었다.

면사무소에 방문해서 본적 주소 지번 및 나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제적 등본을 요청하였다.

전산화가 되어있지 않은 옛날 수기로 작성된 문서가
여러장으로 출력이 되어 발급되었다.

한문 기재된 옛날 제적등본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주소 부터 생년 월일까지
거의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나마도 흐릿해서 담당자와 함께 문서를 연구한
끝에 간신히 할아버지 생일 확인이 가능했다.

 

비석 표기방법

요즘은 비석에 자유롭게 부모님 또는 지인에게
하고 싶은 말도 넣고 사진도 넣고, 참 개성있는
비석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선산에 맞는 디자인과 그에 따른 필수
기록 내용이 있다.

오석 비석 디자인

선산에 세워진 비석은 상기 디자인과 같으며,
화강암 받침대와 오석으로 만든 비석이다.

글씨가 많을수록 비석의 가격이 높아지는데
비석의 높이는 2.5자(75cm), 3자(90cm)를
주로 많이 사용하며, 무게가 100kg 안팎이기
때문에 설치까지 의뢰를 하였다.

정면 :
부(좌측): 본관+ㅇ+이름
모(우측): 본관+ㅇ+이름

좌측 옆면
부 : 생.졸 일시  (양력 또는 음력 표기)

우측 옆면
모 : 생.졸 일시  (양력 또는 음력 표기)

뒷면 :
일반적으로 자녀의 이름을 넣는데 사위,며느리,
손자,손녀 까지 가족 이름을 넣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합장으로 모실 때에는
남자여우 (남자는 좌측에, 여자는 우측에)
모셔야 하며 이는 비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할머니는 여생의 말미에 요양원에서 보내시긴 했지만
근래까지 자녀들을 알아 보았고, 기타 연명을 위한
호스와 같은 의료기기 체결을 하지않고 운명 하셧다.

또한 정신이 말짱 할때 , 모든 증 손자를 보셨으니
나름 성공한 인생을 사신 것 같다.

이제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사망 신고만 남아있으며
전화, 보험등 기타 생전에 가입된 것이 있으면
해지를 진행해야 한다.
1달 이내에 직계 자손이 신분증과 사망 진단서를
가지고 행정복지센터에서 신고만 하면 된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고 잇음

외할머니 장례에 자리를 지켜준 고종사촌 여동생 과
매제들이 3일 동안 자리를 지켜주어서 매우 든든했고
고맙고, 조금은 친해 질 수 있는 계기가 된듯하다.

나만 그런 건가?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기 때문에 이날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두서 없는 글을 남겨본다.

무빈소 장례는 합리적 선택인가?

무빈소로 장례를 하는 것이 대세가 되어 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뜻밖에도 장례식장이
점점 없어진다고 한다.

또한 향후 무빈소 장례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번 장례를 치루면서 느낀점은 가족을 떠나
보낸 다는 것은 경제적 가치를 운운하며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꼇다.

인도 속담에 아래와 같은 말이 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는 세상은 울지만 너는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아라.”

태어날 때도 축복 받으며 태어난 것처럼
운명 할 때에도 작별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변했다.

조문객이 단 한 명만 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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